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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일자: 2007-02-05
 

 

박 목사님, 뵌 지가 꽤 오래되었군요. 해빈이와 윤빈이는 건강한지요. 별 것 아닌 우스개에도 쉽게 폭소를 터뜨려주어서 말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시는 늘 여고생 같은 사모님의 파안대소도 여전하신지요. 몇 년 전에 태국에서 박 목사님을 뵈었을 때 박 목사님의 얼굴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을 느꼈습니다. 함께 늙어가는 제 얼굴은 보지 않고 남의 얼굴만 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때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었습니다. 정말 팽팽할 때였지요.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우리를 ‘할배’ 비슷하게 만들어놓았군요.


  지금도 목사님의 처녀 목회지를 잊지 못하시겠지요. 그 순박한 성도들을 만나 목사님은 젊음과 진심을 그 분들에게 주고, 그 분들로부터는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지요. 목사님이 그 교회를 떠난 후에 “교회역사 수십년 중에 가장 잊지 못할 목회자였다.”는 말을 성도들이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계실 때는 서울로, 춘천에 계실 때는 춘천으로 성도들이 농사한 쌀과 먹을거리를 싣고 아들 뻘 되는 목사님을 찾아가 뵙곤 했던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도 좋은 친구를 둔 감사와 자긍심이 있게 하셨습니다.   


  박 목사님, 목사님은 여러 남매 중의 막내로 태어나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목사님이셨던 아버님 얼굴도 모른 채 자라나셨다지요. 그렇게 편모슬하에서 막내로 자랐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고매한 인격으로 키움을 받으셨는지요. 목사님은 다 잊어버리셨겠지만 목사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 분은 참으로 특별한 분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식당엘 가든, 탁구장에 가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미리 요금을 내곤 하셨지요. 그 방면에선 한 번도 목사님을 앞지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한 두 번 그러다 만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서 헤어질 때까지 줄곧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때의 농촌교회 목회자의 생활은 다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면에는 그렇게 섬기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아시는 사모님의 내조가 컸다고 봅니다. 제가 선교사 초년병일 때 제 모습이 측은해보였던지 “봉투”를 준비해서 제게 건네셨지요. 제가 “다 같은 선교사이고 서로 생활을 잘 아는데 이렇게 하면 제 맘이 편치 않습니다.”라고 하자 사모님이 꼭 건네고 오라고 하셨다면서 그걸 도로 가져가면 사모님께 핀잔을 듣는다며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아서 제가 지고 말았던 적이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추방을 당해 사역지를 잃고 이제는 본국에서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사역하시는 박 목사님, 심은 대로 거두시되 후대들도 그것을 함께 거두게 되기를 바랍니다. 박 목사님,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06,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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