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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용사 영원히 기억합니다”

 

9월 7일 Fort 기념비 헌화, 참전기념관에서 기념식
 

뉴스일자: 2012-09-10
 

한국 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닙니다. 한국전쟁은 영원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필리핀은 6.35 한국전에 자국 군대를 파견하면서 첫 UN연합군에 참여한 나라들 중의 하나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코리아를 지키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데 뜻을 같이 했던 것이다.

필리핀 정부는 유엔과의 약속대로 보병 1개 대대, 연인원 7,400여명으로 구성된 전투부대(Battalion Combat Teams)를 개전 한달 반여 후인 1950 9 19일부터 순차적으로 한국에 투입했다.

이들 필리핀 전투부대는 ‘PEFTOK’라고도 불렀다. ‘Philippine Expeditionary Force to Korea’ 1950 9월부터 휴전후인 1955 5월까지 한국에 주둔했다.

10기동 타격부대가 1950 9월부터 이듬해인 1951년 봄까지, 20전투부대가 그 이후부터 1952 4월까지, 19전투부대가 그로부터 1953 3월까지, 14전투부대가 1954 4월까지, 마지막으로 제2전투부대가 1955 5월까지 주둔하였다.

9 7일은 필리핀인들에게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던 전투부대원들과 이들을 뒤에서 지원했던 남녀 민간 지원단의 숭고한 뜻을 새기는 날이 된 것이다.

2000 8 9일 발행된 필리핀 대통령성명서 353번 문서는 9 7일을 한국전 참전 기념일로 정해놓고 있다. 이 문서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뜻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년 한국전 참전행사를 진행해온 박현모 참전용사회 명예회원은 올해에도 예년과 같이 9 7일 오전 7 Fort Bonifacio의 필리핀 국군묘지 내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한국 보훈처의 지원으로 건립된 한국전 참전기념관에서 기념식과 함께 PEFTOK의 연차총회와 성정우수자녀들에게 한국정부가 주는 장학금 전달 행사를 진행한다.

[마닐라서울 편집부]

한국전에서의 필리핀군 활약상소련과 중공의 대 북한 지원으로 군사적 열세를 면하지 못한 한국군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적시에 유엔의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됐고, 16개국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이 한국에 상륙했다.

  
한국군과 미국군을 제외하고 나머지 14개국의 참전국은 한국전에서 총 3,000명이 전사하고 14,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필리핀은 당시 국내적으로도 경제 치안면에서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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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연대 7,000명을 파병하는 것은 그런 필리핀에게는 무리였다. 어찌되었든 필리핀 정부는 1950 8월 파병법을 통과시키고 전투부대를 조직했다. 선발대는 1950 9 7일 그 첫발을 부산에 내디뎠다.

  
필리핀 병사들은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용감하게 적과 맞서 싸웠다. 전투 경험이 없는 필리핀 병사들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한 수적 열세의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잘 싸워나갔다.

  
서둘러 조직된데다가 단기간의 기초 전투 훈련만을 받고 파병된 군대는 필리핀 단 한 나라였다. 물론 일부 병사들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운 경험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사한 희생자 수가 비교적 적었다는 것은 신의 도움이 아닐 수 없다.

  
필리피노 제 10 전투부대는 4 22, 율동 전투 이후 가까스로 전열을 가다듬고 즉각 반격에 나섰다. 필리피노 병사들은 유엔이 임진강 북쪽 38선 서부 경계 부위에 만든 40마일의 방어선 중 3마일을 분담했다. 이 지역은 미 제 3 보병 사단 관할이었다.

  
필리핀 병사들은 매복용 굴을 무척이나 많이 만들었다. 기관총을 설치하고 경보라인도 설치했다. 서울과 철원 북쪽을 잇는 지점에서 필리피노 병사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10, 20, 19 전투부대에 이어, 14 전투부대가 마지막으로 총구에 불을 뿜었다.

  
2 전투부대는 1953 7 27일 휴전이 되면서 경찰업무로 그 임무를 전환하기도 했다. 필리핀은 한국전에서 90명의 전사자와 300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적의 포로로 잡힌 병사수는 60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필리핀 전투부대의 피해 내용은 필리핀 기록과 우리 나라 관련 기관의 기록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한국전쟁 기념 사업단이나 국가보훈처 등의 자료에 따르면, 필피핀 군은 한국전에서 총 112명의 전사자와 299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측 기록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은 든다.

  
우리나라는 필리핀 참전 용사들을 뜻을 기리는 뜻으로 두 개의 참전비를 세워놓고 있다. 그 하나는 인천 가정동에 있는 1,100여평 규모의 참전비이다. 필리핀 전투부대는 미군 사단에 배속돼 전투를 했다.

  
율동리 전투, 연천 북방 전초진지 쟁탈전,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에서 필리핀 전투부대는 치열했던 만큼 큰 전과도 올렸다. 정부는 이들 필리피노 병사들의 참전을 기념하고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참전비를 건립했다.

  
율동리 전투(1951. 4. 224. 23)는 피노이들이 가정 선명하게 기억하는 한국전 참전 기억이다. 치열하게 싸웠고, 전사자와 부상자가 많이 났으며, 또 그런 희생이 따랐던 만큼 대대적 승리를 이끈 전투이다.

  
연천 북방 5km지점인 율동리에서 중공군 제34사단의 춘계 공세를 맞아 끝까지 진지를 고수, 우측 인접 부대의 철수를 성공적으로 엄호해 냈다.
기념비는 이곳 율동리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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