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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다시 한 번,음식은 사랑이다

 


 

뉴스일자: 2009-12-18
 

나는 말을 하는 것도 좋아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비교적 임기응변에 약한 탓에 글로 표현하는 것이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어서 가끔(아주 가끔) 재치있는 표현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도 좀 줄일 수가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 글쓰기를 중단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느 누군가로 부터 내 글이 저급의 평가를 받는다거나 비난을 받을 경우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도전들은 글을 쓸 힘과 동기를 만들어 준다. 내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어떤 표현들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 글을 만날 때가 그러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한 살리에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 때이다. 그런 좋은 표현을 훔쳐 마치 나의 창작인양 감추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마 표절의 유혹이 이런 것인가 보다.
그러나 비록 내 표현들이 좋은 글들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진다해도 우리는 계속 표현하는 일을 해야할 것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그냥 아름답다고만 생각하면 그건 그것으로 그친다.
그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하면 시인이 될 수 있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화가가 될 것이고 음(音)을 붙히면 음악가가 될 것이다. 최근에 읽게 된 음식 컬럼니스트, 황 교익님의 글이 내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부분을 발췌해서 인용을 할까 하다가 독자들에게 온전한 그의 글을 전해 주는 것도 내 컬럼을 쓰는 일보다도 훨씬 중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에 전문을 싣기로 했다. (황교익님의 좋은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은 한 10년 동안 더하고 감하고 고치고?하는 글이다. 음식은 무엇인가 하는 화두에 나는 늘상 이 글을 떠올린다. 사람은 항상 변한다. 생각도 변하고 글도 변한다. 그 중에 하나 변치 말았으면 하는 것이 '음식은 사랑이다'는 내?작은 명제이다. 일지암에도 눈이 덮였겠다.
2000년에 낸 책 <맛따라 갈까 보다>(디자인하우스 간) 에필로그에 '젖 맛 같은 음식을 먹고 싶다'고 썼었다. 그 책은 우리나라 향토음식의 유래와 그 음식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쓴 것인데, 나의 다음 글쓰기 주제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런 에필로그를 달았었다.
애초 음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 맛칼럼니스트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농산물 전문 기자 노릇을 하다가 음식 전문 기자로 업무영역을 확장한 것이 시초였다. 그러니 '음식은 무엇이다' 하고 개념도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맛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내 '음식이란 대체 뭐지' 하는 화두를 지니고 일을 했었다. 이런 나에게 사자후 같은 깨우침을 준 이가 있으니, 그가 초의선사이다.
초의선사는 우리 차문화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스님이다. 1998년 늦은 봄 초의선사가 기거했던 전남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 갔었다. 나는 다도를 겉멋만 든 사치라고 여긴다. 그러니 차를 마신다는 것이 정신적인 일임을 강조했던 초의선사의 글들은 대체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일 때문에 할 수 없이 일지암을 오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 맛난 음식점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일지암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초의선사가 정다산과 함께 시대의 고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차나 마시며 한가로이 산수를 즐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일지암 뒤꼍에 조그만 샘이 있다. 초의선사는 이 샘 이름을 유천(乳泉)이라 했다. 물 맛이 젖 같다 하여 이렇게 불렀단다. 찻잎을 입에 넣고 씹다가 이 물을 마시면 젖 맛이 난다는 것이다. 젖 맛? 물을 마셔보았다, 젖 맛이 나나 하고. 무미했다. 찻잎을 씹다가 물을 마셔보았다. 쓰고 떫었다. 이건 젖 맛이 아닌데….
젖 맛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두세 살 때 뗀 젖의 맛을 알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젖 맛을 안다. 다 커서,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이 젖 맛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남자들이 꽤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 젖 맛을 보게 되었느냐 하면….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젖몸살이란 것을 하게 된다. 젖 생성은 활발해졌는데 유선이 막혀 젖이 제대로 나오지 못해 젖가슴이 붓는 걸 말한다. 젖을 뽑아내주는 기구가 있기는 한데 성능이 시원찮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젖을 입으로 빨아주는 것이다. 이 짓을 누가 하겠는가. 당연히 남편의 일이다. 그때 젖 맛을 보았다. 어떤 맛이냐 하면, 놀랍게도 밍밍하고 느끼하고 비릿해 속이 울컥 치밀어오르게 하는 맛이다.
유천의 물을 마시면서 혹 초의선사가 결혼을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다가, 만약 그 비린내 나는 젖 맛을 알았다고 하면 오히려 유천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대체 왜 이 샘물에서 젖 맛이 난다고 했을까. 초의선사는 왜 최고의 물이라고 자랑한 그 샘의 이름을 유천이라 했을까.
일지암 사진을 대충 찍고 좁다란 산길을 타박타박 걸어내려오는데, 어느결에 내 입에서 노래 한 구절이 맴돌고 있었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중략>
우리 엄마 무덤가에
기어기어 와서 보니
빛깔 곱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길래
두 손으로 따서 들고
정신없이 먹다보니
우리 엄마 살아생전
내게 주던 젖 맛일세
 
70년대 말 학생들 사이에 떠돌던 운동권 가요집을 보고 배운 노래이다. 함경도 민요라 들었는데 양병집, 서유석, 이연실 같은 가수가 불렀다. 혼자 여행을 할 때면 이 노래와 역시 그 노래책을 보고 배운 '진주난봉가'를 흥얼거리는 것이 내 버릇이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음계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까닭이다. 하여간 그날도 혼자 떠난 취재여행이라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타박타박… 젖 맛일세…" 젖 맛일세? 어? 이 노래도 젖 맛 타령이네! 젖 맛이 뭔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타박네는 소박맞은 여자이고 그녀가 찾아가는 곳은 엄마 무덤이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젖떼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다. 젖꼭지에 소태를 묻히고 옥도정기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도 안 떨어진다. 젖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이다. 왜 아이들은 이 맛없는 젖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일까. 적어도 젖 맛이 좋아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프로이드를 아는 사람은 “음, 구강기라고 입으로 쾌감을 느끼는 단계인데…” 어쩌구 하며 설명할 것이다. 젖 빨던 어릴 적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입으로 얼마만큼의 쾌감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동물학자인 데스몬드 모리스는 그의 책 <접촉>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미와 자식간에는 ‘완벽한 접촉’(안아주고 쓰다듬고 빨아주는 등등 어미와 자식간의 친밀감 넘치는 행동)이 일어나는데 이 접촉에 인간은 강한 집착을 보인다고 한다.(모리스는 남녀의 사랑은 바로 어미와 자식간의 이 접촉을 재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완벽한 접촉이 가장 잘 일어나는 때가 바로 젖을 먹이는 때이다. 젖떼기의 어려움은 접촉 제거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이다.
타박네가 젖 먹으러 엄마 무덤을 찾았을까? 소박맞고 갈 곳 잃은 타박네. 그녀에게는 그 힘겨운 영혼을 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타박네는 모든 걸 다 받아들일 듯이 편안하고 아늑한 접촉의 공간, 곧 엄마의 품이 그리워 젖을 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 처음 맛보는 것은 젖이 아니라 바로 이 완벽한 접촉, 곧 엄마의 사랑인 것이다.
초의선사도 타박네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조선 말 그 혼란스런 세상사를 다 잊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스님이니 내놓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샘물에다 유천이라 이름 붙이고 어머니가 주는 따스함과 평안, 사랑 등등의 맛을 보았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얽힌 실타래 풀리듯 '음식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화두가 일시에 풀리고 말았다. 인간이 태어나 처음 먹는 것은, 그것도 2~3년간 줄창 먹어대는 것은 사랑이다. 젖을 떼고 난 다음에도 얼마간은 이 사랑을 먹어댄다. 밥알을 꼭꼭 씹어 입안에 넣어주고, 생선살을 발라주고, 이것 먹으라 저것 먹으라 밥 위에 반찬을 올려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 사랑은 차츰 희미해지고 그냥 영양 덩어리나 맛으로 음식을 먹게 된다. 뭔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사랑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이다. 끼니로서의 음식,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 서글프고 처연한.
감동적이고 사실적인 다큐 사진으로 유명한 최민식의 작품들을 보면 음식 먹는 사람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그의 사진 속 주요 공간은 장터인데 음식 먹여주는 사진은 따스한 사랑이, 혼자서 음식 먹는 사진은 서글픔이 묻어 있다. 장터라는 공간 자체에 이미 사랑과 서글픔이 공존하기는 하지만 음식 먹는 사람들로 인해 그 사랑과 서글픔은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이 장터라는 세상 속에서 사랑과 서글픔이 엉켜 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이다.
사랑 없는 음식의 극단은 걸식, 곧 무료급식이다. 무료급식 행렬에 끼여 그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배추된장국에 어묵조림과 김치, 단무지. 그닥 맛없는 음식은 아니었다. 음식을 제공하는 단체의 사람들은 환한 웃음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그러나 식판을 받아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식판에 코를 푹 박고 혼자(!) 밥 먹는 일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길거리 식판 위 음식에서 어떻게 티끌 같은 사랑이라도 느낄 수가 있으랴. 외식이 잦은 나는 가끔 그런다. 혼자 음식을 먹다보면, 최고급 레스토랑의 최일류 요리라도 무료급식과 무에 다를까 하고.
젖먹이 때가 지나고 나서부터 사랑 없는 음식이 점점 더 많아만 진다면 인생은 참 고달픈 여정일 뿐일 것인데, 신비로운, 어쩌면 다행스러운 것이 엄마의 젖과 같은 음식이 다 큰 성인이 된 후에 인생에서 다시 한번 등장을 한다. 사랑하는 남녀간의 음식은 엄마 젖과 거의 같다.
인간이 태어나 가장 행복하고 안락한 느낌을 받는 때가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 때인데, 이 행복과 안락을 다시 맛보기 위해 인간들은 사랑을 한다. 다 큰 남녀가 사랑놀이하는 것을 보면, 코맹맹이의 아이 소리를 내며 서로 껴안고 빨고 깨물고 간지럽히고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하듯이. ‘서로에게 음식 먹여주기’도 완벽한 접촉을 위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서로 음식을 먹여주는 행동은 엄마와 아이간에 처음 일어난다. 아이에게는 음식을 먹여주는 엄마가 내 생명을 지켜주는, 내 삶의 최고 지지자로 각인된다. 어른이 되어 사랑을 하면서 서로 음식을 먹여주는 행동은 서로에게 ‘네 생명을, 네 삶을 이제 내가 보살펴줄게’ 하는 사인이 된다. 그래서 보통의 남녀 관계에서는 이런 행동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하고 난 다음에 이런 행동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먹는다는 것이다.
일지암에서 다 내려왔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몇 살때까지 젖 먹었어?" "뭔 엉뚱한 소리야? 니는 초등학교 가서도 젖 묵었다 아이가. 하도 그래서 별명도 젖보탱이 아이가." "헤헤, 난 애정결핍은 없나 보다." "뭔 소리고? 어데 밥은 묵고 다니나. 출장 갔다 그러더만 밥은 꼭 챙겨 먹어라." 인간이 음식을 먹는 행위의 근간에는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초의선사도 어머니한테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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