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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맛있는 막걸리(식당 이루리)

 


 

뉴스일자: 2009-09-28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군사 독재 정권과 매판 자본에 항거했던 1980년 초, 데모가 끝나고 난 광장에는 막걸리로 최루의 기억들을 떨구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1983년도 까지 한국의 대학가에는 사복 경찰들이 버젓이 교내에 상주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도 하형사라는 50대 초반의 사찰이 교내를 순찰하고 다녔는데 신입생이던 우리들은 그 분이 교수님인줄 알고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였고 그 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어정쩡하게 받았다. 나중에 선배들이 “너 네는 짭새 한테도 인사를 하냐”라는 빈정거리는 핀잔을 듣고 나서 얼마나 얼굴이 벌게 지던지… 탈춤반에 있었던 필자는 데모가 벌어지는 날, 길놀이로 일종의 선전포고를 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운동장을 사물패가 한 번 크게 길놀이를 하며 돌면 뒤로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정문을 향해 따랐고, 손을 풀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구호를 외쳐댔다. 이윽고 전경들과 정문을 서로 마주한 체 대치하다가 정문을 여느니 닫느니 한참 실갱이를 하다가 하형사가 “오늘은 이 정도만 하지?” 하며 타협을 요구하면 하늘같은 선배가 “하형사님, 왜 그러세요? 정문은 나가야지요”하며 아주 숙련된 말투로 능청을 건넨다. 정문이 열리면서 가두 시위를 시도할 즈음 여기저기에서 최루탄과 사과탄으로 정문과 시위대들은 뿌연 연기처럼 자욱하게 사라지고 만다. 전경들을 뒤로한 채 교내로 되돌아가면 최루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에게 물과 수건을 내미는, 얼굴에 한참 동안을 걱정과 긴장의 표정을 하는 예쁜 여학생들이 있었다. (눈을 반도 못 떴던 우리 눈에는 다 예뻐 보였다.) 그 뒤로는 투석전.
 
1980년대는 정말 암울한 시기였다. 시국 선언문을 낭독했던 주동자 몇 명이 붙잡혀 끌려가고 데모는 뿌연 최루만 남겨 놓고 끝이 난다. 데모에 참여했던 무리들이 서대문 뒷 골목, 행자네 집이라는 간판도 없는 백반집에 모여 막걸리와 두부 김치를 놓고 뒷풀이를 한다. 잡혀간 선배를 걱정하며 막걸리를 들이키다 보면 의식가를 함께 부르게 되고, 5월 혁명가로 서로의 뜨거운 피를 확인하고 고무시키며 다시 어깨동무를 하며 집으로 돌아 가던 것이 당시의 대학가의 풍경이었다. 지금은 한국인의 술이라고 하면 “소주”를 대표격으로 생각하지만, 막걸리는 엄연히 5천년이 넘은 한국인의 술이다.
 
“걸치게 거른 술이란 의미의 막걸리” 신우창 국순당 연구소 부소장에 따르면 막걸리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된 술”이라고 한다. 막걸리를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다라는 편견은 1975년 막걸리가 전체 주류 시장의 60-70%이상을 차지하던 최고의 전성기 시절,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자 조기 숙성시키려고 카바이드 같은 화학 물질을 공공연히 사용한 까닭이었다. 포천, 이동을 지나가는 국도에는 갸름하게 생긴 막걸리 병이 아니라 양 옆으로도 듬직하게 생긴 이동 막걸리를 놓칠 수 없었다. 인삼을 갈아 넣어 쌉싸름한 맛을 내는 인삼 막걸리, 찹쌀 막걸리, 옥수수 막걸리, 조 껍데기 막걸리… 지금 한국에선 일본 술인 사케바가 유행한다고 하고, 또 일본에서는 막걸리바에서 막걸리 칵테일이 잘 팔린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아마도 막걸리가 건강 술이라는 것과 다이어트 술이라는 것에 일본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것 같다. 실제로 막걸리는 일반 주류와는 달리 상당량의 단백질과 당질, 콜린, 비타민 B가 있다. 막걸리에는 각종 영양성분이 다양하게 단백질 및 아미노산류가 풍부하고 약간 신맛이 나는 유기산인 구연산과 젖산이 있어 청량감을 준다. 또한 여러 가지 종류의 많은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발효 과정 중에 생성되는 효모와 유산균 같은 미생물이 항암 작용을 하는 것은 물론 노화 방지 효과까지 있다. 막걸리 속의 비소화성 식이 섬유는 변비를 예방하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살균 막걸리가 아니라 생 막걸리를 만들어서 판다는 식당”이루리”를 찾아 왔다. 마카티 피불고스 오가 호텔 뒷 골목에 위치한 “이루리”는 사실 찾기도 조금 어려운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반 집을 개조 수리한 것처럼 보이는데 인테리어도 그 옛날의 대폿집을 연상케 한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막걸리가 딸려 조금 덜 숙성된 막걸리를 마셔야 했다. 필자는 한국에 있을 때 “서울 장수 막걸리”를 즐겨 마셨고, 지금도 그 맛을 최고의 막걸리 맛으로 친다. 유통기한도 5일을 넘을 수 없는 생 막걸리다. “이루리”가 빚어 놓은 막걸리 역시 생 막걸리로 제대로 된 막걸리 맛을 낸다. 아직 홍보가 되지 않은 상태이고 그에 따라 손님도 적어 막걸리와 함께할 안주는 만족도가 사실 좀 떨어지는 편이다. 희끗한 반백에 세상을 반 정도만 보시려는 듯 두 눈을 살짝 감은 사장님께서는 음식들을 좀 만들어 냉동고에 보관하면 찾는 손님들이 적어 신선한 맛을 제공할 수 없는 탓에 스탁을 더 만들어 놓다 보니 정작 찾는 손님들이 있을 때는 내놓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신다. 삭힌 홍어에 돼지 고기 편육을 한 점 올리고 묵은 지에 싸서 한 점 입에 넣으며 주욱 들이키는 차가운 생 막걸리의 맛은 발효 미학의 정점이다. 도토리 묵 무침이나 묵밥과 함께 먹는 막걸리도 좋고, 큼직하게 파를 올려 해물과 함께 싸 먹는 해물 파전이나 김치전, 또 즉석에서 강판으로 갈아 지지는 감자전은 또 어떻구. 두부 김치나 시원한 깍뚜기와 함께 먹어도 그만이다. 무엇보다도 비지땀을 흘리고 새참으로 나온 시원한 막걸리와 잘 익은 총각무를 덥석 베어 무는 맛이 최고인 것 같다. 무더운 여름, 논두렁에서 농부들에게 최고의 음료수였던 막걸리의 최고의 안주는 역시 땀이 아니었을까?
 
(조만간 “이루리”에서 생 막걸리와 걸 맞는 안주를 학수고대하며 대포 한잔 하러 찾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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