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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끼타 필리피나스] 준비된 만남

 


 

뉴스일자: 2009-07-09
 

안승권(28기)
활동분야 : 컴퓨터
활동기관 : 카비테 주립대학(Cavite National College of Agriculture)

2006년 겨울 나는 KOICA협력사업의 하청 직원으로 중동의 빈국이며 오랜 내전 미국과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라크로 향하게 됐다.
당시 KOICA 사무소는 자이툰 부대 안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때 처음 KOICA의 존재와 활동을 알게 됐다. 그리고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그 나라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라크에서도 재건사업에 동참하며 나름대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현지 주민이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고 ‘코리아 넘버원’을 외칠 때는 마음 한구석에서 무한한 한국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개발도상국 시절, 선진국에서 우리나라에 선교와 봉사활동을 위해 많은 분들이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지원을 하고 싶었다.
2007년 여름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KOICA에 지원하게 됐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아직 나이도 열심히 일을 할 시기였으나. 주위에선 반대어린 시선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결정에 대해 많이 지지해줘서 선택에 대한 고민보다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설레었고 더 어린 나이에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지원할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을 했었다.
국내교육을 마치고 2007년 10월 현지에 파견됐다. 나의 활동 국가인 필리핀과의 첫 만남의 후덥지근한 더위와 먼저 만나게 됐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날씨부터가 싸움이었다. 국내교육에서 배운 짧은 현지어를 직접 사용하다 보니 다소 놀라는 현지인도 있었다.
현지 교육도 다 마치고 처음으로 부임하는 날이었다. 기관의 동료가 나를 픽업하기 위해 사무소에 도착했다. 그의 첫인상은 참 좋아 보였다. 푸근한 인상으로 나를 받아준 직원과 짧은 인사와 이내 침묵이 흐르고 차는 마닐라에서 2여시간를 달려 나의 활동기관인 카비테주립대학교 나익 분교에 도착했다. 나름대로 대학교로 간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규모와 시설을 생각한 나로서는 실로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작은 어촌 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어업과 쌀생산을 주 생계직업으로 하고 있었다. 학교는 바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좀 특이했다. 사무실에서 바로 바다를 볼 수 있으며 몇 발자국만 나가면 바로 바다가 펼쳐진다. 앞으로 이곳에서 2년간 활동을 해야 할 나로서는 잘 해낼 수 있을 지의 의문과 활동보다는 생존이 더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으나 이곳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전혀 모른 나는 부임 후 크리스마스 전까지 일주일 내내 크리스마스 파티를 참석했던 것 같다.
이제 생각해보면 과연 1년 내내 크리스마스 기간만 기다리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필리핀 국민들은 크리스마스를 정말 큰 축제의 기간으로 여긴다.
이곳에 오자마자 한 일은 이들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 나는 필리핀 가정집을 많이 방문했다. 필리핀 80%가 빈곤층으로 정말 마닐라와 지역의 몇 부유층을 제외하고 생활은 거의 우리나라의 80년대 이전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동료가 나를 자기집에 초대해줬다. 한참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의 저녁식사에는 나무 판자 식탁 위에 길고 넓은 잎이 깔려 있다. ‘바나나잎사귀라’고 했다. 주위에 모여 밥과 반찬을 모두 바나나 잎 위에 깔고 그 위에서 손으로 밥을 먹는 형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으로 밥을 먹어본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동료는 스푼을 사용하라고 이방인인 나에게 배려를 해줬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이곳에 왔으니 이곳 생활을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에 손으로 식사를 했다. 흘리는 게 많았지만 나름대로 맛은 있었다.
누가 필리핀을 영어권 국가라고 했던가. 사실 한국에서 필리핀에 영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과 직장인들은 엄청나다. 하지만 조금만 타운을 벗어나면 영어보다는 현지어인 타갈로그를 많이 쓴다. 이방인의 현지어 실력은 부족한게 많지만 교통수단과 시장에서 흥정 등 여러 가지고 많은 쓸모가 있다.
현지 생활에 익숙해진 후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일단 나의 직종이 컴퓨터 분야이기 때문에 IT분야의 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선배단원이 구성한 인터넷라인을 무선으로 구축했다. 한국 인터넷 속도에서 살다 온 나로서 이곳의 인터넷 속도는 그렇지 않아도 성격이 좀 급한 편으로 속이 터질 일이었다. 텍스트 기반의 웹사이트가 많은 필리핀은 충분했지만 한국 인터넷 사이트를 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무선 영역이 확보되니 여기저기 노트북을 가진 강사들과 학생들이 인터넷을 실외에서 사용한다. 메인 캠퍼스에도 없는 무선시설이 설치되니 학생들도 참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마지막으로 안테나에 KOICA의 마크를 붙이고 여기저기서 인터넷을 즐기는 학생들을 보니 나눔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진 IT 강사들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과 한국어 교육 등은 한국의 IT와 기술의 선진화와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에 좀더 가깝게 다가갔던 것 같다. 하지만 강좌를 개설할 당시에는 마치 폭주 하듯이 등록을 하려고 했고 등록생의 절반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의 약속개념은 실로 황당한 경우가 많다.
이곳 사람들 입장에서 당연한 거고 화를 잘 내지 않는 필리핀 사람들로서는 성질 급한 나의 행동에 가끔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름대로의 이유는 다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핑계’에 대해 거짓말이란 것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 준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가끔 그런 일을 당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나도 어느 정도 필리핀화 된 것 같다.
1년2개월의 남짓의 필리핀 생활은 그렇게 느리면서도 빠르게 지나갔던 같다.
이제 앞으로 IT LAB 구축을 프로젝트로 남겨놓은 나로서는 남은9개월의 활동을 향해가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의 인생에서 한 박자 쉬어감과 동시에 주위를 둘러보고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과의 생활 및 경험을 안겨줬다.
과연 ‘행복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던진다면 이곳 사람들의 풍족하지 않지만 해맑은 미소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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