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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 기업인] 정성 어린 헤어 컷, 리키 레예스

 


 

뉴스일자: 2009-02-27
 

리키 레예스는 미용 사업의 “Darna(슈퍼우먼)”이다.
방송 내외에서 그가 가기진 미용 학교 권위자로써의 명성과 그의 사업 구축 방식은 ‘메시아’적인 날카로움이 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44개의 헤어 살롱 직원 1200명에게 “꿈을 갖는 것을 멈추지 말고 자신의 꿈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라”고 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 스타 어워드(Star Awards)는 1989년부터 헤어 스타일링 및 메이크업 비결을 소규모 사업주 부문과 함께 결합시킨 “뷰티 플러스”의 사회를 담당한 그를 최상의 교육방송 사회자로 인정했다.
사적으로 그는 가정부조차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낮은 수업료로 미용술, 양재, 컴퓨터 과학, 그리고 호텔 및 레스토랑 경영의 기초 과정을 제공하는 리키 레예스 전문학교를 케존시와 키아포에 열고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상적 사회 개량주의자로써 소아암 환자를 위한 기금 지원과 생계 훈련 등의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가 필리핀 대통령과 대통령 일가, 유럽 왕족, 그리고 미국 힐러리 클린턴 영부인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는 2004년에 필리핀 스타지를 통해 “모든 책임 있는 필리핀 기업가들은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모든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미신을 믿는다”고 말하며 어렵고 힘들었을 때 이 같은 격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밝혔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리키
리키는 리카르도(Ricardo Sr.)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아만다 티안테스 엔리케즈(Amanda Tiantes Enriquez)의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자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음부터 리키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는 출생증명서에 그의 아버지 이름으로 레예스 장로를 올려놓았다
리키의 어머니는 남편이 결국 그들을 버릴 때까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집세를 내지 못해 2개월마다 밤 늦게 아파트에서 쫓겨났을 정도로 삶은 힘들었지만 리키는 어머니가 불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빚을 지지 않고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16 살 나이에 리키는 밀짚 가방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이웃의 가정부와 함께 쿠바오의 사회복지 행정사무소를 찾아갔지만 훨씬 더 흥미 있었던 것은 옆 반의 이발과 미용술 과정이었다.
에이프 플로렌도(Abe Florendo)의 저서에 따르면 리키는 가위 한쌍과 립스틱 한 세트로 자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깨달았고 변화의 첫 섬광이 떠올랐다고 전했다고 한다.
 
첫 미용실에 투자한 1000페소
1967 년에 리키의 형수 아나벨(Anabelle)은 케존시 프로젝트8에 미용실을 열었다.
리키는 이곳에서 바닥청소와 정리정돈, 심부름을 하며 매일 20페소를 받았지만 그의 눈은 미용사의 숙련된 손길에 고정돼 있었다.
아나벨과 다른 미용사들은 리키의 유머 감각을 사랑했고 배우고자 하는 그에게 기꺼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했다.
그는 곧 고객들에게 인기 있는 미용사가 됐고 일당도 40페소로 인상됐다.
자신의 수입을 가족의 생활비로 지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1000 페소를 저축해낸 그는 미용실을 열기로 결정하고 23세이던 1973년에 산후안 N.도밍고 거리에 자신의 첫번째 미용실을 열었다.
플로렌도는 “그의 첫번째 미용실은 대단해 보이지 않았지만 기뻐 날뛰는 리키에게는 자신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사실 리키의 미용실은 거울과 의자 한 개, 그리고 드라이 클리닝 가게의 구석으로 밀려 들어간 샴푸를 위한 대야 한 개가 전부였다.
리키는 매일 첫 고객을 보내고 난 후에 고객이 준 비용으로 아침식사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으나 후에는 먼 곳에서 오는 단골고객이 생기는 등 인기를 끌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2년 만에 리키는 인접 상가의 권리를 사기에 충분한 돈을 저금했다.
 
강렬한 흔적  
3년 후 리키는 선구적 활약으로의 발을 내디뎠다.
그는 삼팔록의 레가르다 거리와 말라테의 태프트 애비뉴, 그리고 산후안의 블루멘트릿에 지점을 열었고 그는 이 같은 일을 한 최초의 미용사였다.
그 당시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용사에게서 머리를 하기 위해 고객이 직접 그들의 살롱을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리키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살롱이 고객들에게 더 가까워지길 원했고 그의 기술을 향상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비달 사순이 홍콩에서 제공한 2주간의 커팅과 스타일링 트레이닝 과정에 참석했고 이 트레이닝은 결국 그가 헤어스타일링 경합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 비달 사순의 트레이닝에서 배운 염색 기술로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다.
마닐라로 돌아온 리키는 산후안의 오로라 대로를 따라 더 큰 미용실을 열고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닌 펑키한 헤어를 연출하기 위한 염색을 필리핀인에게 소개하는 또 다른 위험을 감수했다.
머리를 염색한다는 것은 1980년대의 필리핀인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리키는 잇 불라가(Eat Bulaga)에서 약간 별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TV 사회자 치쿠이 홀만(Chiqui Hollman)을 자신의 완벽한 모델로 선정하고 그녀의 짧은 곱슬머리를 팝업 컬러로 염색했다.
씻어낼 수 있으며 2주마다 색상을 바꿀 수도 있었던 이 컬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샤론 쿠네타(Sharon Cuneta)와 팝스 페르난데즈(Pops Fernandez)를 비롯한 떠오르는 젊은 스타들의 인기도 얻어냈다.
그들의 미디어 가시성은 유행을 선도하는 리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전파하기에 이상적이었다.
리키는 승운을 타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으며 결국 자신의 집을 짓게 된다.
충성도, 트레이닝 그리고 멈추지 않는 혁신으로 1985년에 리키는 에드사와 노스 애비뉴 코너에서 건설되고 있던 새로운 쇼핑몰에 입점하는 도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SM City는 쇼핑몰의 크기와 장소가 세입자와 고객 모두에게 조금 불편하다는 비난 때문에 헨리 싸이(Henry Sy)의 쓸데없는 대건축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리키는 서슴지 않고 SM City의 첫번째 세입자가 되어 헨리 싸이의 신뢰를 얻었고 이후 그의 살롱은 모든 SM 쇼핑몰에 입점했다.  
리키는 비즈니스 월드지에서 “싸이(Sy)는 힘든 시기에 내가 그의 곁에 있었다고 느꼈다. 나는 행운아였다”고 밝혔다.
리키는 “나는 결코 불평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그는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그는 언제나 불평하지 말고 그것을 위해 뭔가를 하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숙한 글로리아 로메로(Gloria Romero)가 활짝 웃는 모습을 “Ganda ng lolah moh!(너의 어머니는 아름답다!)”라는 광고문과 함께 내건 대형 광고판을 비롯하여 유명 인사와 광고를 이용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어머니는 슈퍼 히어로
사실, 트레이닝은 리키의 가장 유명한 지지가 됐다.
1984 년에 필-헤어 협동 조합을 창설하고 “Isang Gunting, Isang Suklay”라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카비테, 다스마리냐스 지역 주민들이 하루에 한끼 식사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이 사람들은 이발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지역 사회들은 그가 시작한 생계 훈련을 카피해 전국적으로 8만5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고 여기에는 손주를 위해 음식을 구걸해온 60세 할머니가 필-헤어에 보낸 감사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편지에는 리키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그녀는 손주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먹이고 훌륭한 집으로 이사할 수 있는 새로운 소득원을 발견하게 됐다고 적혀있다.
전영부인 아멜리타 라모스(Amelita Ramos)는 이후 이발을 넘어서는 직업 과정을 제공하는 생계 센터를 전국적으로 설치하고 운영하는 Helping Foundation을 설립할 것을 리키에게 제안했다.
1998년에 그는 소아암 환자들이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Philippine General Hospital’에 놀이방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또 의약품을 위한 기금을 모았고 이후 시골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마닐라에 머물 수 있도록 ‘Philippine Charity Sweeptakes Office’와 함께 침대 150개가 설치된 집을 건설했다.
이런 리키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슈퍼 히어로의 대담한 연승보다 드라마틱한 공상적 사회개량으로 가득 찬 인생을 보내고 있는 그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비즈니스 레슨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모든 전통적인 기업인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다.
*불리한 상황은 내제되어 있던 기업정신을 이끌어낸다.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이런 기업가 정신뿐이다.
*기업가는 기본적인 전략으로써 혁신의 시장을 이용한다.
*기업가는 긍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본다.
*멘토를 갖는 것은 기업인에게 항상 큰 격려가 된다. 멘토는 두려움 없이 스스로를 나누어주며 그들이 나눌 수 있는 것보다 빨리 혁신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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