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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CHRISTMAS? MONEY CHRISTMAS!

 

좌충우돌 필리핀 2년차 크리스마스시즌 견디기
 

뉴스일자: 2008-01-07
 

9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제목에서 들어봤는데, 9월의 크리스마스라니.

솔직히 말하면 9월의 크리스마스는 아니다. 9월부터 크리스마스다. 이곳 필리핀에서는 달 뒤에 Ber가 들어가는 달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September부터다.

September부터 December까지 필리피노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아예 9월부터는 인사가 메리크리스마스다.

요즘은 경기 탓인지 12월이 돼야 겨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만 그래도 필리핀의 크리스마스는 길다.

12월은 트래픽의 달
12월 한달은 한달내내 트래픽(교통체증)이다. 12월에는 택시타기도 겁난다. 평소엔 100페소(약 한화2000원)면 가는 거리를 12월엔 200페소, 300페소 부르는 건 다반다사. 이유는 트래픽과 크리스마스란다. 어제는 그나마 착한 택시기사를 만나 70페소정도의 요금이 나오는 거리를 기분 좋게 30페소 더주고 100페소에 합의를 봤다. 하지만 가는 길 곳곳에 구걸하는 어린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린다. “Sir~메리크리스마스”란다. 가여운 마음에 한 녀석에게 20페소짜리 지폐를 쥐어주니 주위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 갑자기 주위에 꼬마들이 다 달려든다. 내 실수다. 그 아이들을 애써 외면하며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오늘도 집까지 얼마에 갈 수 있을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오죽하면 메트로마닐라개발위원회(MMDA, Metro Manila Development Authority) 바야니 페르나르도 의장은 아예 길거리에서 캐롤을 부르는 행위를 금지했다.
길거리에 캐롤을 부르며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아서다.
페르날도 의장은 “작년에도 길거리에 차창을 두드리며 구걸하던 아이가 과속트럭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하며 “거리의 아이들에게 금품을 주는 것은 그들의 자립심을 없앨 뿐 아니라 사고 위험에 계속 노출시킬 수 있는 행위이므로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필리핀 교통통신부(DOTC,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and Communication)는 크리스마스 승객 보호 차원에서 ‘대중교통 개선운동’을 강화하는 방침까지 내렸다. 교통통신부 대변인의 말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활개치는 승차거부와 미터 사용을 거부하는 택시기사들을 엄중 처벌할 방침”이라고 한다.
촌지와 함께 싹트는 친절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 밑으로 봉투가 하나 들어와 있다. 봉투안에는 크리스마스 인사와 함께 친절하게도 각 가구당 평방미터를 계산해서 얼마씩 돈을 내란다. 우리집은 97평방미터니 1평방 미터당 5.4페소 520페소를 가드(경비)들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주면 감사하겠다는 내용이다. 어쩐지 평소에 불친절하기 짝이 없던 가드들이 요즘 들어 친절해졌다고 느꼈는데, 아… 이런 이유였나 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온 동네에 크스마스 장식이다. 거리에도, 건물에도, 집안은 물론 현관문까지 죄다 크리스마스 장식이다. 작년 태풍 레밍으로 수재를 입은 비콜지방에 취재를 갔을 때 이재민 수용소에 장식돼 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마감을 끝내고 들어와 조용히 책이나 보려고 하니 옆집에서 연말 파티를 하나보다. 집안에 가라오케 기계를 빌려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새벽 1시 2시가 돼도 노래가 멈출 생각을 안한다. 내가 청국장이라도 요리 할라치면 한걸음에 달려와 냄새 때문에 민원이 들어왔다며 주의를 주던 가드들이 이럴 땐 안 나타난다.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목소리 큰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려다가 그냥 참는다.
온 누리에 평화? 온 천지에 악어가..

12월엔 차를 끌고 나오기도 무섭다. 길거리에 깔려있는 악어(?)들 때문이다. 아무리 필리핀이라도 도심지에 악어라니. 여기선 교통경찰을 두고 크로커다일(악어)이라 부른다. 우리뿐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부른다. 한번 물면 돈을 먹기 전까진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필자도 며칠 전 중요한 취재가 있어 운전을 하고 가다 악어에게 물렸다. 기자증을 보여주며 중요한 취재로 가는 길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악어는 연신 “메리크리스마스”란다. 만약 내가 필리핀 초보였다면 ‘이 나라 경찰은 참 친절하기도 하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크리스마스 인사가 왜 ‘머니크리스마스’로 들리는지. 그래도 기자의 자존심을 걸고 끝까지 벌금 스티커를 끊으라고 버텼다. 악어는 한참을 스티커에 뭐라 뭐라 적는 척 하더니 슬쩍 겁을 준다. “당신 스티커 발부 받으면 벌금이 500페소에 면허증이 압수당해. 그러면 다시 시청에 가서 면허증을 찾아야 하고 교육도 받아야 하는데, 그냥 급행으로 처리 해줄까”. 참으로 아량도 넓은 악어다.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교통스티커 밑에다 100페소짜리 하나를 넣어주니 다시 “메리크리스마스”란다. 100페소 짜리 한 장 더 넣어줬더니 “땡큐, 메리크리스마스”란다. 이놈의 크리스마스. 이럴 때면 예수님은 필리핀 악어(경찰)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워낙 크리스마스시즌만 되면 모든 게 과열조짐을 보이고 사건·사고가 늘다 보니 경찰청에서는 지난 10일 ‘성탄절 우범지역 6곳’을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할 정도다. 웃긴 건 성탄절 우범지역 6곳을 합치니 메트로마닐라 전역이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는 필리핀 수도 전체가 우범 지역이라는 뜻이다.  매년 연말엔 폭죽사고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허가 받지 않은 곳에서 불법으로 제조되는 폭죽 때문이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그들은 연말에 폭죽을 사기 위해서만 돈을 모은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이 같은 과열조짐에 몇몇 지방정부는 연말 폭죽판매를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고층의 콘도미니엄(한국의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창 밖으로 바라보는 폭죽의 아름다움만을 구경할 뿐 연말엔 나갈 엄두도 못 낸다. 나갔다간 바로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들의 크리스마스 문화, 필리핀 2년 차 햇병아리 기자가 감당하기엔 아직도 벅차다.

이동은 기자

 gunnie@manil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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